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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양육, 도서

평신도를 깨운다 - 5부. 목회 현장에서 본 가능성

by HR_Archive 2024. 7. 13.

 

5. 목회 현장에서 본 가능성

현장의 필요성

제자훈련의 가능성에 확신이 없을 때 좋은 현장이 엄청난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실제 현장으로 견학을 온 참석자 대부분이 제자훈련으로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는 이웃 교회를 보면서 받은 충격과 도전이 너무 커서 달려온 분들이다. 어느 현장으로 가든 우리가 관심가지고 확인해야 할 부분은 외형적인 부분만이 아니다. 교회가 제자훈련에 관한 철두철미한 철학을 가졌는지, 제자훈련이 목회의 중추신경으로 자리 잡았는지, 건강하게 성장하고 있는지를 유심히 살펴야 한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제자훈련은 중산층 이상의 고학력자에게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환경과 형편에도 접목할 수 있다.

 

한국 교회의 뿌리, 그 초창기의 정신

네비우스 목사의 선교원칙 중 첫째 원리는 아래와 같다.

신자는 누구든지 자기가 전도 받은 그 곳에 살면서 그리스도를 위한 개인 사역자가 되어야 하고 생업에 종사하면서 이웃에게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삶을 살아야 함을 평신도에게 철저하게 가르칠 것

 

이 원리에 담긴 가능성 3가지 가능성을 살펴보자. 먼저 교육 중심의 목회를 가능하게 한다. 전 교회는 세상에서 복음의 증인으로 살도록 부름 받았다. 하지만 설교는 세상을 향해 복음을 선포하는 면이 강하기 때문에 설교만으로는 복음의 증인으로 살아내기가 어렵다. 하지만 교육은 교회와 세상을 망라해서 말씀으로 그 요구를 채울 수 있다. 두 번째는 가정 중심의 목회를 가능하게 한다. 한국 초대교회도 가정 모임을 중심으로 한 성경공부를 통해 신앙훈련을 받았고, 불신 이웃을 가정으로 초대하여 복음을 나눌 기회를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개인 전도 중심의 목회를 가능하게 한다. 이는 훈련 중심의 목회와 가정 중심의 목회에서 축적된 잠재력이 밖으로 터져 나가기 때문이다.

 

사랑의교회 제자훈련 뿌리 내리기

목회 현장에는 이유 없는 열매, 이유 없는 성장은 없다.

 

제자훈련은 지상 교회의 본질에 일치하는 것이고 예수님이 친히 모범을 보이고 명령하신 유일한 목회 방법이다. 그러므로 끝까지 달려가야 한다. 기타 프로그램들은 제자훈련을 더 강화하는 보약이 되게 해야지 제자훈련을 그만두고 그것에 몰입하면 안 된다. 수백명을 모아서 진행하는 코스 훈련이나 훈련없이 영감있는 예배를 개발하는 것은 허상이다. 그리고 제자훈련을 강도 높게 밀고 나가려면 목사와 훈련생은 자리를 자주 비우면 안된다. 훈련진행에 차질이 자꾸 발생하면 조금씩 서로 다른 생각을 하게 되는데 생각이 갈리고 마음이 나뉘는 곳에서 선한 것이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랑의 교회에서는 훈련받지 않은 평신도에게는 사역을 시키지 않는다. 따라서 사람을 잘못 써서 교회가 당할 수 있는 많은 시험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고, 애초에 제자훈련이 철저한 교회에는 질이 나쁘거나 문제가 있는 자들이 처음부터 들어올 생각을 못한다. 그리고 함께 사역을 하는 평신도에게 리듬과 균형을 유지할 수 있도록 적절한 지원을 한다. 영적 사역을 단거리 선수처럼 하면 오래가지 못한다. 오래 뛰고 꾸준히 달리려면 일과 쉼의 균형을 적절히 배합하는 리듬을 지켜야 한다. 사랑의 교회는 1년 중 여름과 겨울에 약 4개월을 풀어주고 쉴 수 있게 하고, 다양한 영적 요구를 채워주기 위한 세미나와 강의를 지원한다.

 

제자훈련에서 순장 교육까지

평신도가 목회자와 함께 분담 사역을 하려면 좋은 믿음과 인격 외에 필요한 요건이 더 있다. 먼저 자기가 누구인가를 바로 알아야 하고, 지도자와 목회 철학을 함께 나눠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은사를 발견하고 어떤 영역에서 사역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확인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전도 훈련에는 함께 나가야 한다. 가르치는 목회자가 거리로 나가지 않는 전도 훈련은 사실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사역을 그만두지 않는 한 계속 순장 교육을 받아야 하는데 순장은 반드시 담임목사가 책임지고 교육해야 한다. 그리고 평신도가 훈련을 잘 받고 능력 있는 사역자로 헌신하면 대부분이 손에서 사역을 놓으려 하지 않는다. 그리고 위에서 언급한 보완적인 프로그램 (세미나, 강의, 평신도대학)등을 운영하면서 영적 필요를 채워준다.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로다

제자훈련은 평신도에게 세상으로 보냄받은 자로서의 강한 소명감을 심어준다. 그리고 다른 형제들 덕분에 건강하게 신앙생활을 하는 빚진 자임을 잊지 않는다. 이러한 생각들이 공동체를 이끄는 강력한 정신이 된다. 그리고 훈련을 받은 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그들을 통해 영향을 받는 신자의 수가 늘면 늘수록 교회의 생명력은 밖을 향해 폭발하게 되어 있다. 사회 속에서 빛과 소금이 되는 일에 무관심하거나 무기력하다면 그 교회는 주님이 원하시는 교회가 아닐 것이다.

 

그리고 훈련 받은 사람은 반드시 일을 해야 한다. 만일 지도자가 사역의 장을 만들어줄 여력이 없다면 훈련은 당분간 중단하는 것이 오히려 더 좋은 선택이다. 다락방(교회의 최소단위 모임, 교회마다 셀, 순 등으로 불림) 모임은 성경공부가 목적이 아니라 예수님을 닮아가고자 하는 또 하나의 제자를 만드는 도장이다. 따라서 다락방의 건강이 바로 교회의 건강이다. 그리고 미리 알아야 할 점은 하나님께서는 처음에 다락방보다는 순장을 빚으시는 작업을 하실 때가 더러 있다. 이스라엘이 자연석으로 제단을 쌓기를 하나님이 원하셨던 것처럼 지금도 마치 석공이 잘 다듬은 돌처럼 흠잡을 데 없이 숙달된 전문인이 인도하는 모임보다는 부족하지만 소박하고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를 가지고 말씀의 보좌를 향해 다가오는 평신도의 모임을 더 사랑하실 것으로 믿는다.

 

현재 사랑의 교회는 성인 등록자의 약 10퍼센트가 훈련된 사역자로 헌신하고 있다. 교회의 규모와 관계없이 10%가 훈련된 헌신자로 뛸 수 있다면 건강한 체질로 보아야 한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대부분의 교회는 훈련되지 못한 자들이 그 10%의 역할을 한다.

 

제자훈련을 하는 목회자의 이미지는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하게 하기 위해 땀과 눈물을 아끼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하는 지도자이어야 한다. 평신도의 가장 깊은 곳을 터치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은 목회자가 무엇을 위해 흘리는 땀과 눈물이냐에 따라 많이 좌우되며 목회자와 느낌이 통하고 이해가 통하는 평신도 층이 두터워질수록 그 교회는 굉장한 능력을 발휘하게 될 것이 틀림없다.

 

남아 있는 문제들

평신도가 영적으로 깨어나면 지도자한테 바라는 기대치가 그만큼 높아진다. 믿음이 자라고 의욕적으로 헌신하기를 원하는 자들은 영적 대식가이다. 따라서 그들의 영적 체력을 뒷받침할 수 있는 자양분이 적절하게 공급되어야 하는데 그것은 고스란히 교역자가 짊어져야 할 십자가로 남는다. 평신도 사역자가 늘어나면 교역자의 역할이 줄어든다고 생각되지만 현실은 평신도 사역자가 늘어나면 교역자가 더 요구된다. 게다가 교역자와 평신도 사역자는 밀어주고 끌어주는 사람이기지 역할이 동일시 될 수 없다.

 

훈련이라는 표현은 강성을 떠올리게 한고 질이 좋지 못한 사람을 비껴가게 하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소위 세상적으로 출세했다는 사람도 적응하기 어렵게 만드는 부작용도 있다. 이들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여건이 허락되지 않아서 제자훈련에 발을 잘 붙이지 못한다. 그들이 어떻게 해서라도 제자훈련을 받아 사회 각 분야에서 소명자로 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교회의 현실적 책임라고 본다면 해당 문제에 대해서는 아직 약점으로 남아있다.

 

마지막으로 지상교회는 절대로 완전하지 않다. 따라서 이상주의의 안경을 쓰고 교역자와 교회를 평가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이상론은 우리가 달려가야 할 목표로 남아야지 우리를 중독하게 하는 마약이 되어서는 안 된다.

 

21세기, 활짝 열려 있는 문

교역자가 무엇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은 평신도의 성경적인 위치와 역할을 바로 회복시키는 것이다. 회복되지 않으면 부모가 자녀를 통제할 수 있는 권위를 점점 잃어 가듯이 교역자도 평신도를 향해 큰소리칠 수 있는 권위를 자꾸 상실해갈 것이다. 그리고 많은 영혼을 구원하려고 하기 전에 한 사람의 제자를 만드는 데 눈을 돌려야 한다. 바울을 위해서라면 자기 목이라도 기꺼이 내놓기를 원했던 평신도 동역자 브리스가와 아굴라와 같은 사역자를 만드는 목회를 하지 않는다면 훗날 이 나라 교회가 어떤 위기에 봉착하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21세기에 건강한 목회, 생산적인 목회, 사회를 이끄는 목회를 하기 원한다면 혼자 뛸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 평신도와 함께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염두에 두는 리더십이 정말 필요한 때가 되었다. 그리고 기회는 항상 있는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