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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양육, 도서

평신도를 깨운다 - 2부. 세상으로 보냄받은 교회

by HR_Archive 2024. 7. 10.

 

 

2. 세상으로 보냄받은 교회

목회 철학을 정립하라

목회 철학이란 교역자 자신의 교회론에서 나온 목회 신념을 말한다. 교회가 무엇인지, 왜 교회가 존재하는지에 대해 자신이 내린 답이며, 교회를 움직이게 하는 추진력이다. 따라서 교역자는 자신이 가진 목회 철학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 스스로 대답할 수 있어야 하고, 동시에 그 대답이 성경에 근거한 것인지 끊임없이 확인해야 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한국 교계에서 교회론은 1980년대까지도 관심 밖의 주제였다. 따라서 이렇다 할 목회 철학 하나 제대로 갖지 못하고 오래된 관행에 따라 목회를 할 수밖에 없었다.

 

목회 철학을 제대로 정립하지 못하면 제자훈련으로 평신도를 깨우는 일을 끝까지 해낼 수 없다. 평신도들은 이미 체질화된 자기 신앙생활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끔찍하게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면 교역자는 힘들고 열매가 없으니 남들이 좋다고 하는 여러 프로그램을 기웃 거리다 결국 포기하게 된다.

제자훈련은 자신이 발견한 목회 철학이 하나님의 손에서 직접 받은 계시처럼 너무나 분명하고 확고해서 입 다물고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한 내면의 불길이 타오르는 자라야 감당할 수 있다. 평신도를 깨우고 싶으면 미쳐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목회 철학을 정립해야 한다. 교회의 본질에 일치하는 목회 철학을 정립해야 바른 목회를 할 수 있다.

 

바울이 이같이 변명하매 베스도가 크게 소리 내어 이르되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 하니
(사도행전 26장 24절)

 

교회는 무엇인가?

교회의 기본적 정의 : “그리스도 안에서 부름받은 하나님의 백성” (고전 1:2~2)
에클레시아 : 신약성경에 쓰인 교회를 가르키는 헬라어 용어 중 가장 일반적으로 쓰인 용어.
하나님의 택함을 입은 사람들의 모임 혹은 회중” 더 엄밀히 말하면 “회중이 모이는 과정과 한자리에 모여 있는 공동체”를 다 포함하는 의미가 있다.

 

지상교회는 완성된 것이 아니다. 따라서 단순히 부름 받은 백성을 돌보는 역할만 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대다수의 평신도는 구원 받았으니 더 이상 할 것이 없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교인의 수는 많지만 대다수는 오합지졸이다. 그리고 지역교회에 대한 오해가 있다. 자신들의 교회가 규모가 작다고 온전한 교회가 아니라는 생각을 무의식중에 하게 되는데 아무리 빈약하고 보잘 것 없는 모임이라도 그 집회, 교회는 하나님의 집회, 하나님의 교회의 발현이요 표현이며 실현이다. 우리가 섬기는 작은 지역 교회를 통해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임하고 있음을 세상이 보리라는 긍지를 가져야 한다. 따라서 평신도를 깨우고 싶으면 하나님이 맡기신 양들이 그 자체로 완전한 하나님의 에클레시아라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어야 한다.

 

교회는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소명을 가지고 있다. , 세상으로 보냄 받은 소명을 함께 가지고 있다. 따라서 부름받은 특권을 가지고 있다면 보냄받은 소명에도 순종해야 한다. 따라서 지상 교회는 아래와 같이 정의내릴 수 있다.

지상의 교회는 세상으로부터 부름받은 하나님의 백성이요. 또한 세상으로 보냄받은 그리스도의 제자다.

 

 

그렇다면 지상 교회가 세상으로 보냄받은 제자로서 어떤 소명을 가지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검토해보자

 

도전받는 전통적인 교회론

전통적 교회론은 선교에 대해 너무 소극적으로 다루고 있어 지상 교회의 소명의식을 약화시켰다. 그 이유는 종교개혁자의 교회론(신성로마제국 시대)당시 사회의 주어진 상황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당시 세상이 이미 복음의 지배 아래 있는 듯이 보였을 그들의 처지에서는 선교의 긴박성을 자각하기가 쉽지 않았다.

 

칼빈이나 루터가 당시에 큰 관심을 가진 것은 교회의 순결이었다. 다시 말해 어떻게 하면 거짓 교회에서 참 교회를 성경적으로 명확하게 구별해낼 수 있을까 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관점은 참 교회일수록 세상과 거리를 멀리 두어야하는 것처럼 보이게 했고, 그 결과 수벽 년을 내려오면서 교회는 예배와 경건만 중시하는 방어적인 태도를 강하게 고집하는 모습으로 비쳤다.

 

우리가 칼빈이나 루터에게 물려받은 가장 위대한 유산 중 하나는 개혁의 정신이다. 그들은 자기들이 처한 시대를 개혁하기 위해 성경으로 모든 것을 시험하고 그 원리를 적용하면서 자기들이 처한 문제에 답하는 데 전력을 쏟았고 우리 역시 이 정신을 이어받아 오늘의 교회를 새로운 눈으로 직시해야 한다. 그리고 오늘의 교회는 선교를 위한 가장 큰 잠재력을 지닌 평신도를 초대 교회의 제자들처럼 복음의 증인으로, 사랑의 봉사자로 무장하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교회의 사도적 본질

옥한흠 목사님은 한스 퀑의 <교회론>을 통해 지상 교회는 사도의 계승자로서 세상으로 보냄받은 소명자라는 사실을 확신하였다. 교회는 본질적으로 사도의 터 위에 세워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평신도를 깨우는 일은 주님으로부터 받은 명령으로 볼 수 있다.

 

사도성은 예수님께서 사도들을 세상에 보내시고 그들의 터 위에 당신의 몸 된 교회를 세우셨다는 데서 시작한다. 사도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처음으로 목격한 증인으로서, 직접 모든 족속에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 예수님에게서 보냄을 받은 사람들이었다. 따라서 사도들의 증거와 사역, 즉 복음의 터 위에 세워진 것이 아니면 하나님의 교회라고 할 수 없다.

그리고 사도직을 어느 개인이 대신하거나 대표할 수 없다. 사도의 계승자는 소수의 사람이 아닌 모든 교회이다. 그리고 한스 퀑은 사도성의 계승을 유효하게 하는 것이 바로 성령이라고 말한다. 사도들을 감동시키고 그들을 증인 되게 하신 그 성령께서 지금은 사도가 전해준 복음을 교회 안에서 성도가 그대로 믿고 순종하도록 하시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내적인 연속성이 끊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성령은 오셔서 선택받은 자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불러 사도들의 증거를 그대로 받아, 믿고 고백하게 하신다. 위안보다는 증인으로 준비시켜 선교사로 만신다. 사탄은 입을 닫게 하지만 성령은 지상 교회에 임하여 모든 믿는 자의 입을 열어 세상에 복음을 전하게 한다.

 

그렇다면 교회가 사도의 계승자가 되는 구체적인 방법은 무엇일까?

첫번째는 사도들의 교훈을 계승하는 것이다. , 사도들의 신앙 고백을 따르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것은 개신교에 속한 모든 교회가 공감하고 또 실천하고 있다. 신약성경의 말씀을 가감 없이 가르치고 선포할 뿐 아니라 평신도가 그 말씀을 자기 생명의 양식으로 받도록 지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두번째는 사도의 사역을 계승하는 것이다. 이것은 사도들이 주님으로부터 받은 명령을 그대로 이어받아 복종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점에 대해 한스 퀑은 이렇게 진술한다.

 

사도성은 교회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무언가가 아니다. 그저 교회가 스스로 복종해야 할 문제이다

 

 

소명이라고 하면 항상 특정 사람들의 전유물처럼 생각하는데 평신도 자신들이야 말로 온 천하에 다니며 복음을 전하라는 명령을 받고 그대로 순종하다 순교한 베드로의 계승자라는 소명을 일깨워주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사도의 사역을 계승하는 것이 얼마나 본질적인 것인지 확인해보자. 신약성경에서 하나님의 뜻이라는 표현을 분석해보면 단수형으로만 표현되어 있다. 그리고 그 뜻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세상을 구원하려는 자신의 구속 사역을 완성하는 일이다. 사도 바울은 교회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길은 온 천하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시인하게 되는 것이라고 선언한다 (빌립보서 2:10~11)

결론적으로 교회의 중요한 목적은 모든 족속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그 외 봉사, 성례, 교리, 예배는 이 목적을 위한 부수적인 것이다.

 

교회의 존재 이유

교회의 존재 이유는 3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교회는 우선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존재한다. 그러므로 교회의 첫째 의무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 이다. 그리고 그 예배는 하나님의 인격에 근거해야한다. 그 분이 누구신지 먼저 알아야 그에 합당한 예배를 드릴 수 있기 때문이다. 골로새 교회를 보면, 그들이 진정 하나님께 찬송과 감사를 드렸던 자리는 평신도들이 모여 피차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며 권면할 때였다. 물론 공식적인 예배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어떤 한 가지 형식을 예배로 고집하거나 예배와 말씀 나눔을 분리한 것은 아니다. 따라서 목회의 방향이 예배 일변도로 흐르고 있으면 평신도를 깨울 수 없다.

 

교회의 존재 이유 두 번째는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존재한다. 즉,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는 것이다. 이 일에는 단 한사람도 예외가 될 수 없다. 평신도가 본연의 위치에서 그 역할을 다하는 사도적인 교회가 되려면 소수의 사람이 아닌 전 교회가 하나님께 직접 나아가 제사드리며, 복음을 증거하며, 이웃에게 봉사하는 에클레시아의 공동체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만인 제사장직의 근본 정신을 다시 한번 회복해야 한다.

믿는 자는 누구나 다 왕 같은 제사장이며 적어도 4가지의 영광스러운 특권이 있다.
1. 하나님께 직접 나아가는 특권이다. 그리스도의 희생적 죽음을 통해 누구나 믿음으로 은혜의 보좌 앞으로 직접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2. 영적 제사를 드리는 특권이다. 새 언약 안으로 들어온 신자는 모두 다 하나님께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릴 책임이 있다. 그리고 그 제사는 교회뿐만 아니라 자신의 삶 전체를 다 포함한다.
3. 말씀을 증거하는 특권이다. 말씀을 증거하는 것은 모든 신자에게 부과된 사명이다.
4. 중보하는 특권이다. 신자의 제사장직은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것으로 끝이 아니라 교회 안의 다른 형제와 세상에 있는 이웃을 위해 봉사하는 데까지 발전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교회는 성도를 양육하고 훈련하기 위해 존재한다. 하지만 각 분야에 종사하는 교인은 많은데 아무런 영향력도 끼치지 못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교회 안에서 시행된 수많은 예배, 설교, 공과공부가 얼마나 평신도를 변화시키며 소명자로 불러 세웠는지 냉정하게 자문할 필요가 있다. 교회가 어머니로서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타성에 젖어 있는 목회의 전반을 다시 점검해서 부족한 것은 보완하고 잘못된 것은 주저 말고 시정하는 결단을 보여야 한다.

 

이상으로 교회의 존재 이유 3가지에 대해 알아보았다. 그런데 중요한 점은 예배, 전도, 훈련은 불가분의 관계이며 어느 하나를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 균형이 무너지게 되면 교회는 세상에 아무 책임이 없는 것 같은 착각을 주고, 선교는 특정인의 전유물처럼 될 것이며, 평신도는 예배와 자기 중심적인 요구가 있을 때만 교회를 필요로 하는 무능한 무리로 전락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성도의 영광스러운 예배와 잃은 양들이 돌아오는 축제, 그리고 당신의 자녀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는 성장, 이 모두를 통해 영광받길 원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