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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설교요약

(2025년) 교회를 웃게하는 중직자 훈련

by HR_Archive 2025. 12. 1.

 

 

0912 교회를 웃게하는 중직자 훈련 (1)
제목 : 성경에 웃는 중직자
본문 : 시편 119편 131절

131절. 내가 주의 계명들을 사모하므로 내가 입을 열고 헐떡였나이다

요약
 중직자라고 하면 자신과는 상관없는 직분이라 여길때가 많다. 하지만 교회는 단순히 건물이 아니라 예수님을 따르기로 결심한 성도 각자가 교회이며, 중직자는 그 교회의 중요한 직분을 맡은 자이다. 그리고 교회 안에서는 중요하지 않은 직분은 없다.

 영적으로 뜨거운 교회를 살펴보면 성도님들, 특히 중직자들이 말씀으로 뜨겁다. 즉, 성경에 웃는 중직자인 것이다.
 말씀이 황성하고, 믿음과 성령으로 충만한 헌신자가 많아질 때 교회는 부흥한다. 각기 제 소견에 옳은것에 웃는 교회는 쇠락할 수 밖에 없다.

 그러니 우리가 말씀을 통해서 웃고, 말씀에 헐떡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어떤 사람이 말씀에 헐떡이는지 알아보자

1. 주님의 말씀의 맛을 아는 사람
  - 말씀이 내 삶을 조명하는 것을 경험할 때 말씀의 맛을 알게 된다
   -> 순금보다 더 귀하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단 말씀을 기대하자 (시19:10)
  - 평생에 성령의 조명이 끊어지지 않도록 서로를 위해 기도하자

2. 주님의 말씀의 힘을 경험한 사람
  - 하나님은 나를 구원하시는 나의 하나님이시다 (삼하22:1~3)
   -> 나의 반석이시요 요새이신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자

3. 주님의 말씀을 그리워하는 사람
  - 사슴이 물을 갈급히 찾듯이 말씀을 갈급하게 찾아야 한다 (시42:1)
   -> 하나님은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신다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에 웃는것이 아니라 말씀을 묵상하고, 그 말씀을 통하여 내 삶을 조명하시는 성령님을 기대하며 살자

 


 

0919 교회를 웃게하는 중직자 훈련 (2)
제목 : 기도에 웃는 중직자 - 자리를 옮겨라
본문 : 누가복음 18장 10절

10절.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요약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다. 우리는 호흡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듯이 우리의 영혼도 쉬지않고 호흡해야 한다.
 하지만 호흡을 아무렇게나 하면 안된다. 호흡이 불안정한 마라토너는 풀코스를 완주할 수 없듯이, 영혼의 호흡이 불안정한 성도는 제자의 길을 완주할 수 없다.

 세상 사람들, 그리고 다른 종교의 사람들도 기도를 한다. 하지만 기도를 받으시는 대상이 다르다. 무속신앙 또는 타 종교는 사람들이 만든 신에게 기도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아버지가 되신 하나님께 기도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잘 알아야 기도할 수 있다. 우리는 (전능자이신 엘로힘, 준비하시는 여호와 이레, 함께하시는 여호와 삼마, 나의 목자가 되시는 여호와 로이, 우리의 인생을 회복시키는 여호와 라파) 이신 하나님께 기도한다.

 그렇다면 기도란 무엇인가? 나의 위시 리스트를 쏟아내는 일방적인 소통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인격적 만남이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 기도하지 않으면, 잘못된 기도를 반복하면 하나님과의 거리가 멀어질 수 밖에 없다.

 모든것이 정해졌으니 기도할 필요가 없다 라고 오해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것은 모든 것을 결과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하나님에게 집중하기 보다는 기적과 유익에 집중하면 하나님께 실망하게 되고 기도 생활을 멈추게 된다.

 그리고 고상한 기도만을 해야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예수님이 알려주신 기도에는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고 되어있다. 그리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였을때는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라고 하시면서 기도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가? 중언부언 하지 말고(마6:7) 고통가운데 있을 때 부르짖어야 한다.(렘33:3)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시기 때문에(삼상16:7) 인터넷에서 긁어온 기도문으로는 하나님과의 인격적 교제는 기대할 수 없다. 

 예수님이 하셨던 것 처럼 우리도 고통 가운데서도 기도해야 한다.(시22:1~2) 심지어 가만히 있는것도 기도가 될 수 있다.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목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시46:10)

마무리
 기도는 언어행위가 아니다. 내가 왕이었던 모습을 버리고 그리스도를 왕좌에 모시고 말씀대로 사는 삶을 사는 것, 즉 나의 자리를 옮기는 행동이다. 
 그리고 기적과 같은 기도응답보다는 그 분을 의지하고, 찾고, 내 삶의 문제들을 맡기고 기도하며 매일의 은혜를 구해야 한다.

 


 

0926 교회를 웃게하는 중직자 훈련 (3)
제목 : 예배에 웃는 중직자 - 열정있는 예배자가 되라
본문 : 마태복음 9장 13절

13절.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요약
 예수님이 세리인 마태의 집에서 많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할 때 바리새인들이 이를 지적하자 예수님이 호세아서를 언급하며 의인이 아닌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하신다. 언급하신 내용은 이스라엘 백성의 불성실한 회개로 인하여 여호와께서 호세아를 통해 "제사와 번제 보다는 인애와 하나님 아는 것을 원한다"(호6:6) 라고 말씀하신 부분이다.

 가인과 아벨은 각각 자신의 소산을 여호와께 드렸다.(창4:3~5) 아벨은 믿음으로 예배를 드렸기에 하나님이 받으셨지만(히11:4), 가인의 예배는 받지 않으시니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한다.
 이 모습을 보면 우리의 예배와도 같다. 성경이 말하고 있는 하나님을 바르게, 믿음으로 예배를 드려야 하는데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만든 신 - 하나님은 이러이러 해야한다 라는 생각 - 에게 예배한다. 그러니 하나님은 우리의 예배를 받지 않으시고, 자연스럽게 우리는 울분을 토하며 신앙의 즐거움을 잃어간다.
 그러니 우리는 예배가 무엇인지, 예배의 대상과 방법 등에 대해 깊이 고민해야 한다.

1. 예배의 뜻
 예배는 禮(예도 례), 拜(절 배)의 합성어로 엎드리어 절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구약에서 예배라 번역된 원어 '샤하'도 동일하게 엎드리다, 몸을 구부리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뜻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예배는 순종과 복종이 전재되는 것이다.
 우리는 매주마다 예배를 드린다. 주일에 참석만 똑바로 해도 52번의 예배를 드린다. 하지만 이렇게 수 많은 예배를 드리면서 우리는 몇번이나 순종했는가? 말씀을 듣고 순종하지 않으면 그것은 예배를 드린것이 아니다.

2. 예배의 대상
 예배의 대상이신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예배, 내 마음이 평안해지는 예배를 드리게 된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을 바르게 알아야 한다.

 ① 하나님은 영이시다. 따라서 그의 능력은 무한하고, 불변하며, 영원하시다. 이러한 하나님의 영광을 맛보면 우리는 즐겁게 예배드릴 수 있다.
 ② 하나님은 한분이시다. 원래부터 계셨으며 유일하시다. 우리는 모든것의 시작이신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이다
 ③ 하나님은 삼위로 계신다. 구원을 계획(성부)하셨고, 실현(성자)하셨으며, 그것을 우리의 것으로 만드신(성령)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이다.
 
 특히 성령의 역사하심 없이는 우리는 예배할 수 없다.

3. 예배의 목적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 하는 것이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이 말은 즉,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때 우리는 비로서 즐거워 할 수 있다. 따라서 예배 가운데 감격이 없다면 우리는 즐거워할 수 없다.

4. 예배의 마음가짐
 많은 사람들이 예비군 훈련 가듯이 예배를 드린다. 하지만 이렇게 드리는 예배로는 예배의 감격을 느낄 수 없다.
 예배는 우리의 마음과 목숨, 뜻과 힘(막12:30)을 다하여 드려야 한다. 즉, 사모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예배를 사모하는가? 하나님의 말씀에 목마른가?를 계속 점검하며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
 예배가 무감각해진다는 것은 내 삶에서 하나님에 대해 무감각해진다는 의미이고, 결국 성도로서의 거듭남은 찾아볼 수 없어진다.

 우리는 모두 죄인이지만 하나님의 구원 계획으로 인하여 건짐 받은 존재이다. 그러니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자

5. 예배의 방법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는 영과 진리로 예배해야 한다. (요4:24) 이 말이 난해하게 들릴 수 있는데 구원을 우리의 것으로 만드시는 성령(영)과 구원계획을 실현하신 그리스도(진리)로 예배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성령의 역사가 없으면 우리는 예배할 수 없으며, 우리의 기도는 우리의 중보자이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해야한다.

 그리고 우리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재물로 드려 영적 예배를 드려야 한다. (롬12:1) 우리의 몸은 단순히 신체가 아니라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자신을 바르게 예배하는 자를 찾으신다.(요4:23) 그리서 우리는 우리의 몸을 거룩한 산 재물로 드리고, 영과 진리로 예배해야 한다. 

 


 

1017 교회를 웃게하는 중직자 훈련 (4)
제목 : 영혼을 보며 웃는 중직자
본문 : 누가복음 10장 25~27절

25절. 어떤 율법교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이르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26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27절. 대답하여 이르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요약
 예수님의 비유에서 사마리아 사람은 강도만난 사람을 불쌍히 보는 눈을 가졌고, 그를 위해 기꺼히 희생했다. 하지만 제사장과 레위인은 영혼을 보는 눈이 없었기에 강도만난 사람을 나를 더럽히는 사람이라 여기며 그냥 지나쳤다. 실제로 율법교사들은 세리, 창녀, 사마리아 사람들을 이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예수님이 "너도 이와같이 하라"라고 하신 것은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라는 일차원적인 얘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선한 사마리아인과 같이 "영혼을 보는 눈"을 가져라는 의미이다.

 리더의 유일한 목표는 영혼을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받았다는 것을 깊이 묵상한자가 영혼을 보며 웃을 수 있다.

1. 자신의 영혼을 먼저 돌볼 줄 아는 교회리더가 되어야 한다
  - 나의 영혼을 가꾸는 사람이 타인의 영혼을 건드릴 수 있다

2. 영혼을 보며 웃을 수 있는 교회리더가 건강한 교회를 세울 수 있다
  - 영혼을 바라보는 것은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 그리스도를 경험한 자만이 할 수 있다
   -> 나의 이득에 집중하는 교회는 건강할 수 없다
   -> 정죄하려는 마음이 들 때 우리도 죄인이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된다

3. 영혼을 볼 수 있는 교회리더가 웃으며, 행복하게 길을 안내할 수 있습니다
  - 구원의 감격이 있는 사람이 감격을 나눌 수 있다
   -> 구원으로 가는 길을 소개하고 싶은 행복한 열망이 있다

4. 영혼을 보며 웃는 교회리더가 해산의 고통을 견디어 냅니다
  - 사도 바울도 갈라디아 교인을 위하여 다시 해산의 수고를 했다 (갈4:19)

 주님 품에 안기는 행복과 즐거움을 안 자가 영혼을 보고 웃을 수 있다.
 그러니 교회일에 매몰되지 말고 먼저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자. 그리고 나의 이웃또한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녀임을 알고 전하자

 


 

1024 교회를 웃게하는 중직자 훈련 (5)
제목 : 다른 부서를 보며 웃는 중직자 - 어디까지 보이시나요?
본문 : 빌립보서 2장 1~3절

1절.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2절.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3절.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요약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하는 나의 모습은 어떠한가?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처럼, 내가 소속된 공동체만 바라보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는 영적으로 보이는 만큼 기뻐할 수 있다. 그러니 우리의 영적 시야를 넓혀야 다른 부서를 보면서 웃을 수 있고, 그 기쁨을 나눌 수 있다.

1. 예수 안에 있는 사람이 다른 부서를 보며 웃을 수 있습니다 (1절)
  - 먼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이다
   ->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권면, 사랑, 교제, 긍휼, 자비를 누리고 나눌 수 있다
   -> 일반인은 할 수 없다

2. 같은 마음, 뜻, 사랑을 가진 사람이 다른 부서를 보며 웃을 수 있습니다 (2절)
  -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이자 지체의 각 부분이다 (고전12:27)
   -> 그러니 두 마음을 품으면 다른 부서를 보며 웃을 수 없다

3. 진짜 그리스도인이 다른 부서를 보고 웃을 수 있다 (3절)
  -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남을 존중하는 사람이 타 부서를 보며 웃을 수 있다
   -> 이것은 그리스도가 작동하는 그리스도인만 가능하다
   -> 그리스도가 작동한다는 것은 행함이 있다는 의미이다

 내 안에는 '나는 죽고, 주가 사는' 그리스도가 살고 있는가?
 우리는 영적 시야를 넓혀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어야 한다.(빌2:5) 넓히는 만큼 하나님을 누리고, 즐거워하며, 감사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나의 의지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니 나의 속 사람이 변화되도록 하나님께 간구하자. 그리하여 한번밖에 없는 일생 속에서 그리스도의 마음을 경험하도록 하자.

 


 

1107 교회를 웃게하는 중직자 훈련 (6)
제목 : 하나님이 보시며 웃으시는 중직자
본문 : 신명기 6장 18~19절

18~19절.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고 선량한 일을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복을 받고 그 땅에 들어가서 여호와께서 모든 대적을 네 앞에서 쫓아내시겠다고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아름다운 땅을 차지하리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으니라

요약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보고 웃으실까? 오늘 본문을 보면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한 사람. 즉, 사람의 시선이 아닌 하나님의 시선을 의식하는 사람을 보며 웃으신다.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행13:22a)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는 다윗을 죄를 아예 짓지 않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죄를 돌이키고 다시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따랐다는 뜻이다. 주를 향한 마음이 전심이었고 이런 사람만이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룰 수 있다(행13:22b)
 
 사도 바울은 25~30년동안 16,000km 이상 움직이며 자신의 생명은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고 복음을 전했다. 그는 전제와 같이 자신의 삶을 전부 그리스도께 부으며 선한 싸움을 싸웠고,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했다 (딤후4:6~8)

 이와 같이 우리도 하나님을 향해 전심으로 달려가며, 전제와 같이 나의 삶을 드리자. 그리하여 "착하고 충성된 종"의 삶을 살자. 이 삶을 살며 겪은 고통과 눈물은 결국 마지막 때에 하나님이 닦아주시고 칭찬해 주실 것이다.

 


 

1114 교회를 웃게하는 중직자 훈련 (7)
제목 : 영적 전쟁에서 웃을 수 있는 중직자
본문 : 고린도후서 2장 11절

11절. 이는 우리로 사탄에게 속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그 계책을 알지 못하는 바가 아니로라

요약
 그리스도인의 목표는 말씀따라, 믿음으로 승리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그리고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영적 전쟁에서 이겨야 한다. 영적 전쟁은 내가 하기 싫다고 빠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에서 총알이 나만 빗겨나지 않듯이, 우는 사자와 같이 성도를 삼키려는 사탄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성도를 끊임없이 공격한다.
 우리가 영적 전쟁을 제대로 준비하지 않는다면 영적 침체를 겪다가 결국 공동체가 갈라질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악한자의 길은 피하고 떠나며(잠4:15~16),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려라 (살전5:22) 한다.

※ 영적 전쟁의 특징
 - 적이 눈에 보이지 않음
 - 그러나 실존하는 존재이다
 - 영적 승패가 일상을 좌우한다
 - 영적 승패가 교회의 건강을 좌우한다

※ 영적 침체의 현상
 - 그리스도인이 마땅히 누려야 할 영적 기쁨이 상실
 - 진리가 나에게 영향을 미치지 못함
 - 생각과 감정이 진리를 대체함
 - 하나님이 아닌 나에게 집중함
 - 진리에 대한 확신을 잃음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악의 영들을 상대하는 것이다. (엡6:12)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실존해는 존재와 싸워야 한다. 이것을 모르고 자꾸 옆 사람과 싸우면 악의 영들의 전략에 넘어가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마음을 힘써 지켜야 한다. (신4:9) 생명의 근원이 마음에서 나오기(잠4:23) 때문이다.

 영적 전쟁에 시달리는 성도는 마음이 혼미하게 되어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된다.(고후4:4) 즉, 다른 사람들이 그 성도의 모습을 통해 하나님의 형상을 볼 수 없게 된다. 그러니 영적 승패는 개인의 일상 뿐만 아니라 교회의 건강까지 좌우한다.

 그러니 우리는 하나님의 전신 갑주(엡6:13)를 취해야 한다. 우리가 육신을 가지고 있지만, 육신으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악의 견고한 진을 무너뜨려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해야 한다. (고후10:3~5)

 

 우리 모두 영적 전쟁을 잘 준비하여 예수님의 이름으로 승리하는 영적 리더가 되자.

 


 

1128 교회를 웃게하는 중직자 훈련 (8)
제목 : 자신이 아닌 교회를 웃게하는 중직자
본문 : 에베소서 4장 13~14절

13절.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14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요약

 디모데전서 3장에는 장로(감독)와 집사의 자격에 대한 내용이 적혀있다. 권사는 성경에 나온 표현은 아니지만 총회헌법에서 이 직분을 명 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전자자료실을 보면 교회 중직자에 대한 자격이 설명되어 있다.

*장로의 자격 : 만 35세 이상 된 남자 중 입교인으로 흠 없이 5년을 경과하고 상당한 식견과 통솔력이 있으며 디모데전서 3:1∼7에 해당한 자로 한다.

*권사의 자격 : 여신도 중 만 45세 이상 된 입교인으로 행위가 성경에 적합하고 교인의 모범이 되며 본 교회에서 충성되게 봉사하는 자.

*집사의 자격 : 집사는 선한 명예와 진실한 믿음과 지혜와 분별력이 있어 존숭(尊崇)을 받고 행위가 복음에 합당하며, 그 생활이 다른 사람의 모범이 될 만한 자 중에서 선택한다. 봉사적 의무는 일반 신자의 마땅히 행할 본분(本分)인즉 집사 된 자는 더욱 그러하다(딤전 3:8∼13).

 

 중직자는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이어야 한다. 영적으로 성숙하기 위해서는 영적으로 태어나(거듭남) 자라야 한다. 그리고 자기를 부인하고 주님을 따라야 한다. 내가 웃기보다는 교회를 웃게하는 자가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이다.
 그러면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인지는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

1. 어린아이의 일을 버린 중직자 (고전13:11)
  - 어린아이의 신앙은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될 수 없다 (13절)
   -> 내면 아이를 찾아 내보내야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을 수 있다 (14절)

2. 선악을 분별하는 중직자
  - 훈련을 통해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다 (히5:14)

3. 사랑의 중직자 (고전13:4~8)
  - 모든것은 사라지지만 사랑은 영원하다

 닮고싶은 영적 어른의 유무가 교회의 건강을 좌우한다. 그러니 단단한 음식을 먹으며 훈련받고, 믿음의 선배들을 통해 배워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이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