룻기의 배경은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던(삿21:25) 시절이다.
1장 1~6절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 베들레헴(빵집)에 흉년이 들었다. 그리하여 엘리멜렉(하나님은 나의 왕)은 아내인 나오미와 두 아들과 함께 모압 지방으로 떠나 정착했다. 흉년은 단순 식량난이 아니라 하나님의 징계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나의 왕"이라는 이름의 남자는 징계를 회피하기 위하여 예배하는 곳을 떠나 하나님이 버리신 모압(신23:3)으로 떠났고, 그 땅에서 2명의 며느리를 맞이하였다. 본인이 잘 살기 위해서 하나님으로 부터 떠났지만 결국 모든 남자들이 다 죽고 나오미와 두 며느리(오르바, 룻)만 남게 되는 절망적인 상황이 발생했다.
우리는 다양한 이유로 하나님을 떠난다. 번아웃, 오해, 실망, 그리고 하나님 없이도 잘 살 수 있을 것이라는 교만 등..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우리는 하나님 없이 잘 살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던 중 나오미는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돌보시사 그들에게 양식(말씀)을 주셨다 함을 듣고 베들레헴으로 다시 돌아오려고 한다. 이처럼 하나님은 아무 소망이 없는 자에게 희망을 주고, 돌아오게 하신다.
1장 6~22절
나오미는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위해 양식을 주셨다 함을 듣고(샤마 /듣다, 경청하다) 모압땅에서 나와서(야차 /원래 있던 곳으로 나가다) 유다 땅으로 돌아가려고(슈브 /돌아오다, 회복하다) 한다. 그래서 두 며느리에게 각기 너희 어머니의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지만 룻 만은 나오미를 붙좇았다.(다바크) 룻은 단순히 갈 곳이 없어서 붙좇은 것이 아니라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룻1:16)라고 고백하며 붙좇았고, 룻의 결심을 본 나오미는 더이상 말하기를 그치고 함께 베들레헴으로 돌아갔다. 돌아온 시기는 추수를 시작할 때 였다.
룻은 자신의 배경(가족, 신, 편안한 삶)을 포기하고 나오미를 따라 하나님을 붙좇았다. 그리고 하나님은 보아스를 통하여 룻을 붙좇으신다.
2장 1~12절
룻은 이삭을 주우러 나간다고 나오미에게 이야기한 후에 밭에서 이삭을 줍는다. 그러던 중 우연히(미크레 /우연-하나님의 섭리) 엘리멜렉의 친족인 보아스의 밭으로 간다. 보아스는 살몬과 라합(이방여인) 사이에서 태어난 자로 유력한 자이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에게 우연은 없다. 필연적인 하나님의 섭리가 있을 뿐이다. 하나님의 목적을 향하여 움직이도록 다스리신다.
룻이 보아스의 밭에서 이삭을 줍고 있을 때 마침 보아스가 나타난다. 보아스는 자신의 밭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라고 하며 축복을 하고, 축복 받은 사람도 보아스에게 축복한다. 이처럼 그리스도인들은 말씀과 은혜를 나누며 서로 축복해야 한다.
보아스는 자신의 밭에서 일하는 룻을 보자 3가지 배려를 한다. 이곳에서 쭉 이삭을 줍게 허락하고, 안전을 확보해주며 물을 마실 수 있도록 한다. 이런 배려에 룻은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며 왜 이런 은혜를 베풀며 돌보시는지 묻자 보아스는 룻의 행적을 얘기하며 여호와의 날개 아래에 보호를 받으러 온 룻에게 하나님이 온전한 상을 주시기를 원하노라 라고 얘기한다.
이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날개 아래에 있으면서 세상사람들에게 베풀어야 한다. 그들은 우리가 베푼 사랑으로 하나님을 알게 될 것이다.
2장 13~23절
보아스는 룻이 식사를 맛있고, 충분히 먹을 수 있게 하고, 이삭을 많이 주울 수 있도록 은혜(헤세드 /자비, 인애)를 베푼다. 우리도 각자의 삶에서 헤세드를 베풀어야 한다. 그것을 통하여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알고, 그리스도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베푼 헤세드는 계속 흘러가게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헤세드를 계속 나눠야 한다. 타인을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다(마5:7)
한 에바(약 22L)쯤의 보리를 수확한 룻에게 나오미는 상황을 물었고, 룻은 보아스와의 일을 이야기 한다. 나오미는 보아스를 축복하면서 그가 우리 기업을 무를 자(고엘 /속량하다 구속하다)임을 룻에게 알려준다.
룻기는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잘 표현해준다. 하나님은 우리를 조건없이 사랑하시고 은혜를 주신다. 그리고 우리의 죄를 속량하기 위해 그리스도를 이땅에 보내셨다. 끝까지 고엘 하신 것이다.
우리는 고엘을 할 능력은 없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나눌 수 있다. 그러므로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만 연락하는 것이 아니라 연약하고 아픈 지체들에게 찾아가서 위로해주자.
3장 1~18절
룻은 나오미에게 보아스의 발치 이불을 들고 누우라고 했고, 룻은 나오미의 말대로 행했다. 그러자 보아스는 룻에게 축복하며 룻이 현숙한 -하나님을 사랑하고 말씀대로 사는- 여인임을 모든 사람이 다 안다고 얘기한다.
그러면서 자신보다 더 가까운 기업을 무를 자가 있음을 말하며 만약 그 사람이 기업 무를것을 거부한다면 자신이 무를 것이라고 맹세한 후에 룻에게 보리를 주어 새벽쯤에 나오미에게 보낸다.
고엘은 공동체를 보호하기 위해 하나님이 만든 장치이자, 장차 오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속량하시는 것을 미리 보여준다.
그리고 보아스는 유력한 자 임에도 불구하고 질서를 지킨다. 아무리 선한 의도라 하더라도 질서와 절차를 지켜야 한다. 이것또한 하나님이 만드신 것 이기 때문이다.
4장 1~22절
보아스는 자신보다 우선순위에 있는 기업무를 자인 아무개(성경에서는 이름을 밝히지 않늗다) 불러서 어떻게 할 것인지 얘기한다. 아무개는 모압 여인과의 결혼, 재산상의 손해를 이유로 기업 무를것을 거부하여 보아스가 공식적으로 기업 무를 자가 된다.
보아스는 룻을 아내로 맞이하였고, 여호와께서 룻을 임신하게 하여 아들을 낳았는데 그는 다윗의 아버지인 이새의 아버지였다. 결국 헤세드를 베푼 보아스와, 하나님을 붙좇은 룻을 통하여 다윗이 태어났고, 신약으로 이어지면서 이 둘은 그리스도의 족보에 이름이 올라가게 된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며 붙좇으신다. 그러므로 우리도 서로에게 헤세드를 나눠주고, 하나님을 붙좇는 삶을 살자.
'교회 > 성경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디모데후서 요약 (다시 전한 복음) (1) | 2025.02.28 |
---|---|
매일성경 25.01월 묵상기도문 (0) | 2025.02.01 |
매일성경 24.12월 묵상기도문 (1) | 2024.12.31 |
매일성경 24.11월 묵상기도문 (0) | 2024.12.31 |
매일성경 24.10월 묵상기도문 (2) | 2024.12.31 |